| 故이종상 화백 |
이종상 화백 별세 소식
이종상 화백은 2026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였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월 11일 오전 8시로 예정됐다. 구체적인 사인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아직 상세히 공개되지 않았으며, 유족 관련 세부 사항 역시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이종상 화백의 부고 소식이 알려지자 미술계 안팎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폐 영정을 두 점이나 남긴 생존 작가로 평가받아 왔으며, 화폐 속 인물화라는 특수한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녀왔기 때문에 이번 별세 소식이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다.
이종상 화백 프로필 나이
이종상 화백의 기본 프로필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 항목 | 내용 |
|---|---|
| 이름 | 이종상 |
| 호 | 일랑(一浪) |
| 출생 | 1938년, 충청남도 예산 |
| 별세 | 2026년 9월 8일 (향년 88세) |
| 학력 |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
| 소속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
이종상 화백은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이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전통 동양화 기법과 현대적 조형 감각을 함께 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는 별세 당시 기준으로 88세였으며, 활동 초기부터 최근까지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종상 화백 경력 학력
이종상 화백의 경력은 등단 시점부터 화려했다. 1961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서 작품 "장(匠)"으로 특선을 차지했고, 이후 3년 연속 특선을 거두며 최연소 국전 추천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국내 최고 권위의 공모전에서 연속 수상한 이력은 당시로서도 이례적인 성과로 평가받았다.
1975년에는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첫 해외 초대 개인전을 열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외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이어갔고, 1997년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카루젤 전시장에서 대형 벽화를 선보였다. 이때 전시된 벽화는 길이가 71.3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화가가 루브르 전시 공간에서 이 정도 규모의 작품을 선보인 사례로 화제가 됐다.
교육자로서의 이종상 화백의 이력도 상당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서울대학교 박물관장과 미술관장을 역임했다. 이 밖에도 문화재위원회 박물관분과 전문위원, 한국벽화연구소장 등 여러 직책을 거치며 한국 미술계 전반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상 경력으로는 200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4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2010년에는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2021년 12월에는 독도 관련 활동을 인정받아 독도평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종상 화백 화폐 영정 신사임당 율곡 이이
이종상 화백을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은 단연 화폐 속 인물 영정이다. 그는 1977년부터 사용된 5천원권 율곡 이이 영정을 그렸고, 이후 2009년 발행된 5만원권 신사임당 영정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한 명의 작가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화폐 인물화를 모두 남긴 사례는 국내에서 매우 드물어, 그는 생전 "국내 유일의 생존 화폐 영정 작가"로 소개되곤 했다.
화폐 영정 외에도 이종상 화백은 우륵, 광개토대왕, 원효대사, 장보고 등 역사적 인물의 국가표준영정을 다수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11점에 이르는 국가표준영정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역사 속 인물의 얼굴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어 그가 얼마나 신중하고 학문적인 접근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국가표준영정 제작 과정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역사 고증과 문헌 연구까지 병행해야 하는 작업이라, 화가로서의 실력뿐 아니라 학자적 태도까지 요구되는 일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종상 화백 독도 활동
이종상 화백은 독도와 관련한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77년부터 독도를 직접 방문하며 독도 관련 작품 활동을 이어왔고, 독도문화심기운동 본부장을 맡아 독도의 자연환경과 역사성을 예술로 알리는 데 힘써왔다. "독도에서 고구려까지"라는 표현이 그를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될 만큼, 그는 우리 역사와 국토에 대한 애정을 작품 세계 전반에 녹여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종상 화백 배우자 가족
이종상 화백의 배우자와 자녀 등 구체적인 가족관계는 현재까지 공개된 언론 보도에서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원로 예술인의 경우 개인적인 가족사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종상 화백 역시 화가로서의 공적 활동과 작품 세계가 주로 조명되어 온 편이다. 유족 및 가족 관련 세부 정보는 추후 공식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며, 확인되는 대로 내용을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이종상 화백 4·19혁명 참여 일화
이종상 화백의 젊은 시절 일화 중에는 4·19혁명과 관련된 부분도 있다. 그는 1960년 4·19혁명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미술학도로서 시대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었던 이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와 인물, 국토에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은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종상 화백 화실의 창을 열고 등 저서
이종상 화백은 화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1980년 발간된 《화실의 창을 열고》, 1983년의 《중등미술》, 1987년의 《솔바람 먹내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저술 활동은 그가 단순히 붓을 든 화가에 머물지 않고, 미술 교육과 이론 정립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종상 화백에 대해서 자주 묻는 질문
Q1 이종상 화백은 언제 별세했나요?
A1 이종상 화백은 2026년 9월 8일 별세했으며, 향년 88세였다.
Q2 이종상 화백의 나이는 어떻게 되나요?
A2 이종상 화백은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별세 당시 향년 88세였다.
Q3 이종상 화백이 그린 화폐 영정은 무엇인가요?
A3 이종상 화백은 5천원권 율곡 이이 영정과 5만원권 신사임당 영정을 모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Q4 이종상 화백의 빈소와 발인 일정은?
A4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월 11일 오전 8시로 예정됐다.
Q5 이종상 화백의 배우자와 가족은 누구인가요?
A5 현재까지 공개된 보도에서는 배우자 및 가족 관련 구체적인 정보가 확인되지 않으며,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면책: 본 게시물은 공개된 언론 보도와 공식 발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향후 발표되는 공식 입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이데일리, 경향신문, 전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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