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별세 장훈 야구선수 감독 장훈 나이 프로필 야구선수 경력 별세 내용 총정리-by꿀팁✅

 

장훈 야구선수
장훈 야구선수
-재일동포 출신 일본 프로야구 레전드 장훈(하리모토 이사오)이 향년 86세로 별세하면서 그의 나이·프로필·선수 경력·감독 경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장훈 별세 


장훈 별세

장훈은 2026년 9월 9일 오후 5시쯤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일본 TBS, NHK, 마루스포 등 현지 매체들은 9월 10일 일제히 그의 별세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정확한 사인은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했다는 사실만 확인된 상태다.

항목내용
별세 일시2026년 9월 9일 오후 5시경
별세 장소일본 도쿄 소재 병원
향년86세
공식 발표 매체TBS, NHK, 마루스포 등

일본 매체 마루스포는 그를 두고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명타자이자 오랫동안 사랑받은 해설가였다고 평가했다. NHK 역시 그를 '안타 제조기'로 불렀던 인물로 조명하며 그의 별세를 비중 있게 다뤘다.


장훈 나이 프로필 하리모토 이사오 


장훈 나이 프로필

장훈의 본명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勲)이며, 한국명은 장훈(張勳)이다. 1940년 6월 19일 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장상정, 어머니 박순분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인동 장씨다. 부모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녕군으로, 아버지가 먼저 일본으로 건너간 뒤 어머니가 가족을 이끌고 뒤따라 도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항목내용
이름(한국명)장훈(張勳)
이름(일본명)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勲)
출생일1940년 6월 19일
출신지일본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본관인동 장씨
포지션외야수
소속팀 이력도에이 플라이어스, 닛폰햄 파이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 등

어린 시절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지켰으며, 이후 재일동포 사회를 대표하는 야구 스타로 성장했다.


장훈 야구선수 기록


장훈 야구선수 기록

장훈은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시즌 125경기에 출전해 115안타 13홈런 57타점 10도루 타율 0.275를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도에이, 닛타쿠, 닛폰햄 파이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23시즌 동안 활약했다.

항목기록
통산 출전2,752경기
통산 안타3,085안타 (NPB 역대 1위)
통산 홈런504홈런
통산 타점1,676타점
통산 타율0.319
통산 OPS0.933
타격왕7회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뒤에는 '홈런왕' 오 사다하루와 함께 이른바 'O-H 타선'을 구축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1976년과 1977년 일본시리즈에서는 한큐 브레이브스에 패해 2년 연속 정상 등극에는 실패했다. 1980년 롯데 오리온스로 이적한 첫 시즌에는 타율 0.261로 다소 부진했지만, 이후 커리어 후반까지 꾸준히 안타를 쌓아 1981년 은퇴할 때까지 NPB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인 3,085안타를 남겼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장훈 감독 경력 


장훈의 감독 경력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공개된 자료를 종합하면 그는 프로야구단 감독을 맡은 이력이 없다. 1981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곧바로 지도자의 길이 아니라 해설가와 평론가로 방향을 잡았고, 이후 수십 년간 일본 방송계에서 독설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유명한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해왔다.

필자가 그동안 여러 일본 프로야구 관련 기사를 살펴보며 느낀 점은, 장훈이 감독이 아닌 해설가로서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이 한국과 미국에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했을 때는 당시 감독과 코칭스태프, 심지어 일본야구연맹까지 강하게 비판하며 화제를 모았다. 마쓰이 히데키의 메이저리그 도전이나 후배 선수들의 거취를 두고도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며 '독설 해설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장훈 국적과 KBO 총재특보 이력 – 한일 야구 가교 역할


장훈은 재일 한국인으로서 오랜 기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8세 무렵 일본 프로야구단이 일본 국적 취득을 조건으로 입단을 제안했지만, 어머니가 조국을 팔면서까지 야구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며 거절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귀화 제의를 받았지만 80세가 넘도록 한국 국적을 지켰다.

다만 장훈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소식은 재일 한국인 사회는 물론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한편 그는 1982년 한국 프로야구(KBO) 출범 당시부터 2005년까지 KBO 총재 특별보좌를 맡아 초기 재일교포 선수들이 국내 무대에 진출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1980년)과 국민훈장 무궁화장(2007년)을 수훈하기도 했다.


장훈 수훈 경력과 명예의 전당 헌액


장훈은 은퇴 후인 1990년 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선수로서 이룬 업적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연도수훈·수상 내역
1980년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90년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07년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

일본 언론들은 그를 '희대의 천재 타자'라고 표현하며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통산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조명했다.



🔍 장훈에 대해서 자주 묻는 질문


Q1 장훈은 언제, 어디서 별세했나요?
A1 장훈은 2026년 9월 9일 오후 5시경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였다.

Q2 장훈의 본명과 일본명은 무엇인가요?
A2 한국명은 **장훈(張勳)**이며, 일본명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勲)**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두 이름 모두 널리 알려져 있다.

Q3 장훈의 통산 최고 기록은 무엇인가요?
A3 통산 3,085안타로 일본 프로야구(NPB)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타격왕도 7회 차지했다.

Q4 장훈은 감독 경력이 있나요?
A4 공개된 자료상 장훈은 프로야구단 감독을 맡은 이력이 없다. 1981년 은퇴 이후에는 해설가·평론가로 활동을 이어갔다.

Q5 장훈은 왜 KBO와 인연이 깊나요?
A5 장훈은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부터 2005년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특별보좌를 맡아 초기 재일교포 선수들의 국내 진출을 도왔다.


면책: 본 게시물은 공개된 언론 보도와 공식 발표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향후 발표되는 공식 입장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데일리스포츠한국, 머니투데이, 일간스포츠, 서울경제, 뉴데일리, 스포츠경향, 국제뉴스)


2026.09.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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