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글라스맨 |
샘물교회 선글라스맨
파슈툰어와 페르시아어(다리어)에 능통하고 이스라엘에서 대테러 협상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 대테러 담당 요원이 협상에 투입됐다. 8월 28일 협상 타결 직후 선글라스를 낀 이 요원이 탈레반 협상대표와 어깨동무를 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며 선글라스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청와대 대변인 천호선은 탈레반 측이 얼굴 공개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실명은 공식 확인된 바 없어 이 글에서도 국정원 블랙요원(선글라스맨)으로만 표기한다.
샘물교회 피랍사건
분당샘물교회 소속 단기선교단 20명이 2007년 7월 13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베이징을 거쳐 카불에 도착했고, 현지 선교사 3명이 합류해 총 23명(남성 7명, 여성 16명)이 활동에 나섰다. 정부가 이미 아프가니스탄을 여행제한국가로 지정하고 방문 자제를 권고했음에도 방문이 강행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7월 19일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이동하던 전세버스가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탈레반에게 납치됐고, 일부 자료에는 운전기사가 매수돼 함정에 빠진 정황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는 왜 희생됐을까?
피랍자 대부분은 20~30대 주부, 학생, 사회초년생이었고 청년부를 담당하던 배형규 목사(당시 42세)가 7월 25일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며 이튿날 정부가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협상이 지연되던 닷새 뒤인 7월 30일에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심성민씨(29세)도 추가로 살해당했는데, 일부 문서에는 이 날짜가 7월 31일로 기록되어 있어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탈레반 요구조건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초기에는 아프간 주둔 한국군(다산·동의부대, 약 200명) 즉각 철군이라는 정치적 요구였다가, 7월 22일 탈레반 수감자 23명 석방으로 바뀌었고, 7월 23일 가즈니주 수감 탈레반 전원(약 55명)으로 확대됐다. 7월 25~26일 배형규 목사 살해 이후 협상이 급속히 악화됐다가, 8월 중순 이후부터 수감자 맞교환 요구가 조금씩 철회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결국 이 정치적 요구가 최종 합의에서는 완전히 빠졌는데, 이 지점이 이면 조건, 즉 몸값 의혹의 근거로 계속 거론된다.
국정원 협상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7월 20일 외교통상부에 국외테러사건대책본부가 설치됐고, 7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이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직접 통화했다. 첫 대면협상은 8월 10일 가즈니주 적신월사 사무실에서 이뤄졌으며, 8월 11~12일(2차), 16일(3차), 28일(4차) 대면협상이 이어졌고 2차 협상 직후인 8월 13일 여성 인질 2명(김경자·김지나)이 먼저 석방됐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7월 22일경 직접 현지로 가 협상을 진두지휘했다.
몸값 논란은 사실일까?
정부와 탈레반은 공식적으로 이면거래는 없었다고 부인했지만, 로이터는 2,000만 달러 이상, 알자지라는 최대 2,000만 파운드, 아사히신문은 1인당 10만 달러 또는 총액 약 200만 달러 지급설을 각각 보도했다. 다만 확실히 확인된 건 피랍자 실비(항공료·체류비) 약 6,000만 원을 정부가 반환 요청했다가 교인들의 성금으로 변제했다는 부분이며, 이는 몸값과는 성격이 다른 별개 논란이다.
19명은 어떻게 돌아왔을까?
8월 29일 12명, 8월 30일 7명이 순차 석방되며 9월 2일 생존 피랍자 19명이 귀국했다. 최초 피랍(7월 19일)으로부터 약 42일 만이며, 최종 합의에는 한국군 연내 철수, NGO 인력 철수, 선교활동 금지, 신변 안전보장, 수감자 석방 요구 철회가 담겼다.
영화 교섭 실제인물 실화
실제 협상은 국정원이 주도했지만 영화에서는 외교부 인물이 주도하고 국정원 요원은 조력자로 재구성됐다. 극중 요원은 위조지폐 혐의로 수감 중 투입되는 허구 설정이며, 시대배경도 2006년으로 각색돼 제네시스 1세대 차량 등장이라는 시대착오 오류도 지적됐다.
🔍 샘물교회 선글라스맨에 대해서 자주 묻는 질문
Q1.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사건은 언제 일어났나요?
A1. 2007년 7월 19일 분당샘물교회 선교단 23명이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에서 탈레반에 납치됐고, 42일 만인 9월 2일 생존자 19명이 귀국했습니다.
Q2. 선글라스맨의 실명은 밝혀졌나요?
A2. 공식적으로 확인된 실명은 없습니다. 일부 매체에서 특정 이름이 언급된 적은 있지만 교차 확인된 1차 보도나 국정원의 공식 발표는 없어 단정할 수 없습니다.
Q3. 몸값은 실제로 지급됐나요?
A3. 정부와 탈레반은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로이터, 알자지라, 아사히신문 등 외신마다 다른 액수의 지급설을 보도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Q4. 영화 교섭은 실화인가요?
A4.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모티프로 했지만 인물 설정과 시대배경 등 여러 부분이 극적으로 각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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