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그맨 엄영수 |
-개그맨 엄영수의 정확한 나이와 프로필, 두 번의 이혼 사연, 세 번째 아내와의 만남, 엄용수에서 엄영수로 개명한 이유까지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엄영수(엄용수) 나이
엄영수는 1952년 8월 8일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만 나이로는 74세에 해당한다. 다만 일부 매체에서는 1953년생으로 소개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출생연도 표기에 차이가 존재한다. 그는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재학 시절이던 1977년 연극배우로 먼저 데뷔했고, 이후 1979년 동양방송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정식으로 코미디언 활동을 시작했다.
| 항목 | 내용 |
|---|---|
| 본명 | 엄용수 |
| 현재 이름 | 엄영수 |
| 출생 | 1952년 8월 8일 (일부 매체 1953년생 표기) |
| 출신지 | 경기도 화성 |
| 학력 |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
| 데뷔 | 1979년 동양방송 개그 콘테스트 |
출생연도 표기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방송 활동 초기 프로필과 최근 매체 보도 사이에 기록이 조금씩 다르게 인용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두 기록 모두 1950년대 초반 출생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며, 40년 넘게 방송 활동을 이어온 원로 개그맨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엄영수(엄용수) 프로필 학력
엄영수는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재학 중이던 1977년 연극 무대로 첫발을 내디뎠고, 1978년에는 뮤지컬 무대에도 섰다. 이후 1979년 동양방송 개그 콘테스트로 정식 데뷔했으며, 1981년에는 MBC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대표작으로는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가 있으며, 아부는 하지 않지만 결국 아첨으로 마무리되는 간신 캐릭터로 큰 인기를 얻었다.
- 1977년 연극배우 데뷔
- 1978년 뮤지컬 배우 데뷔
- 1979년 동양방송 개그 콘테스트 정식 데뷔
-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 금상 수상
- 대표작 '유머 1번지 -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엄영수는 공채 코미디언 1세대로 분류되며, 손경수, 정명재, 이상운, 김의환, 이경래, 최양락 등 당대 인기 개그맨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특유의 속사포 같은 입담과 정치인·유명인 성대모사로 큰 웃음을 안겼다.
엄영수 방송 활동 근황은 어떻게 될까
엄영수는 세 번째 결혼과 개명 이후에도 각종 예능과 토크쇼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결혼 생활과 개인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예능에서 자주 풀어내면서, 오랜 팬들뿐 아니라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 세 번째 결혼 이후 예능·토크쇼 출연 지속
- 개인사에 대한 솔직한 입담으로 다시 화제
- 세 번째 아내와 안정적인 결혼 생활 유지 중
엄영수는 왜 개명을 했을까
엄영수는 오랫동안 '엄용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종종 '엄영수'로 발음하는 일이 반복되자 이를 계기로 개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 방송에서 단순히 부르기 편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법원에서 개명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 앞으로는 엄영수로서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취지로 개명 사유를 소명했다고 전했다. 결국 법원은 그의 행복추구권을 인정해 개명을 허가했다.
| 개명 배경 | 세부 내용 |
|---|---|
| 계기 | 아나운서들이 반복적으로 엄영수로 발음 |
| 소명 사유 | 엄용수로서의 불행, 엄영수로서의 행복 추구 |
| 결과 | 법원 개명 허가, 현재 엄영수로 활동 |
엄용수 결혼 이혼
엄영수는 개그맨으로서는 꾸준히 사랑받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아 두 차례 이혼을 겪었다. 나무위키 등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첫 번째 결혼은 나이 차가 있는 신인 탤런트와 이루어졌는데, 배우자가 집을 나가면서 여러 사적인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폭로전으로 번져 큰 화제가 됐다. 두 번째 결혼에서는 배우자의 아들이 프로골퍼로 알려지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지만, 이 역시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 첫 번째 결혼: 신인 탤런트와 결혼, 이후 폭로전 끝에 이혼
- 이혼 이후 한동안 '이혼남' 이미지로 방송 출연
- 두 번째 결혼: 배우자의 아들이 유명 프로골퍼로 알려짐
- 두 차례 결혼 모두 이혼으로 마무리
특히 첫 번째 이혼 과정에서는 재산이 가압류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엄영수는 훗날 방송에서 만약 그 시점에 이혼하지 않았다면 전 재산을 잃을 뻔했다는 취지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그는 첫 번째 배우자에 대해 아들을 낳아주고 재산을 지켜주기 위해 애써준 사람이라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엄용수 세 번째 아내 결혼
엄영수는 2019년 지인의 소개로 재미교포 사업가인 세 번째 아내를 처음 만났다. 아내는 미국에서 의류 사업을 하던 사업가로 알려져 있으며, 남편과 사별한 지 3년이 된 시점에 엄영수에게 먼저 연락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후 사랑을 키워가다 2021년 2월 초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교회에서 최측근만 참석한 가운데 스몰 웨딩으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주례는 새 신부의 아들이 맡았는데, 그가 실제 목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별한 순서였다.
| 세 번째 아내 정보 | 내용 |
|---|---|
| 직업 | 재미교포 의류 사업가 |
| 만난 시기 | 2019년 지인 소개 |
| 결혼식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 교회 |
| 결혼식 형태 | 최측근만 참석한 스몰 웨딩 |
| 주례 | 신부의 아들(목사) |
엄영수는 방송에서 세 번째 아내와의 첫 통화를 회상하며, 아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와 남편과 사별한 지 3년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했던 순간을 운명적인 만남으로 소개했다. 그는 딸이 아버지의 선택을 묵묵히 지켜봐 준 것이 세 번째 결혼을 잘 치를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원래 불교를 믿었던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를 위해 개신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엄영수(엄용수)에 대해서 자주 묻는 질문
Q1. 엄영수의 본명은 무엇인가요?
엄영수의 본명은 엄용수이며,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자주 엄영수로 발음한 것을 계기로 개명을 결심해 현재는 정식으로 엄영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Q2. 엄영수는 몇 년생인가요?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엄영수는 1952년 8월 8일생으로 소개되며, 일부 매체에서는 1953년생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Q3. 엄영수는 왜 이혼을 두 번 했나요?
엄영수는 첫 번째 결혼에서 배우자와의 갈등이 언론에 공개되는 폭로전을 겪으며 이혼했고, 두 번째 결혼 역시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이혼으로 마무리됐다.
Q4. 엄영수의 세 번째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요?
세 번째 아내는 재미교포 의류 사업가로, 2019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사랑을 키운 끝에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Q5. 엄영수는 왜 이름을 바꿨나요?
엄영수는 아나운서들이 반복적으로 이름을 잘못 발음한 것을 계기로 개명을 결심했고, 엄용수로서의 불행을 뒤로하고 엄영수로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취지로 법원의 개명 허가를 받았다.
이 글은 공개된 언론 보도와 나무위키 등 공개 프로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확인되지 않은 개인 신상 정보는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추후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이 있을 경우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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